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매직 존슨 (문단 편집) == 기타 == *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웃는 얼굴이 매력적인 [[훈남]]이다. 선수생활 초반에는 실수도 많은 놈이 실실 웃기만 한다고 까이기도 했으나 근성과 승부욕은 [[래리 버드]] 못지 않은 선수. * 아들이 자신이 게이라고 커밍아웃을 했다. 아버지인 매직 존슨은 아들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 국산 만화 [[달숙이]]에 나오는 '''매직 쫀슨'''은 이 캐릭터를 패러디한 것. * '''[[마이클 잭슨]]과 매우 돈독한 사이로 유명하다.''' 1991년 발매한 [[마이클 잭슨]]의 앨범 [[Dangerous]]의 수록곡 "Remember the Time"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초반부에 파라오의 시종으로 나와서 왕비를 기쁘게 해줄 광대들을 소개하는 역할로 나온다. 또한 [[퍼렐 윌리엄스]]의 "Happy"에도 등장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ZbZSe6N_BXs=163s|#]] * [[사우스 파크]] 시즌12 1편에선 [[HIV]]에 감염된 [[카일 브로플로브스키|카일]][* 카트먼한테 전염됐다.]과 [[에릭 카트먼|카트맨]]이 치료법을 찾기 위해 그의 저택을 찾는 전개가 나오는데, 끝내 찾아낸 치료법은 달러 입자 용액을 혈관에 주입시켜 에이즈 바이러스를 섬멸하는 것. * 농구 만화 [[디어보이스]]의 [[후지와라 타쿠미(디어보이스)]]는 매직 존슨을 모델로 한 캐릭터이다. * [[NFL]]의 [[로스앤젤레스 램스]]가 2016 시즌부터 [[세인트루이스]]에서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오는 것이 확정되고 시즌 티켓 예매를 시작했는데 돌아온 램스의 시즌 티켓 1호 예약자가 됐다.[[http://money.cnn.com/2016/01/19/news/magic-johnson-rams-season-tickets/|#]] * 예전에 팀 동료 [[제임스 워디]]와의 호흡에 대해 인터뷰하던 도중 말실수를 했는데, 서로 텔레파시가 통한다는 뜻의 ESP(ExtraSensory Perception)라고 하려다가 "우리는 [[ESPN]][* 미국에서 가장 큰 스포츠 채널 중 하나.]이 있는 것 같아요!(It's almost like we have ESPN)"라고 했다가 이게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거의 흑역사가 된 적이 있다. 상식적으로 NBA 선수가 ESPN을 모를리가 만무하기 때문에[* 이걸 국내로 비유하자면, 한국 국내 아이돌들이 [[Mnet]]이 뭔지 모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단순한 말 실수로 보이나 그의 인기와 당시 위상 때문에 "멍청한 스포츠 선수들이 하는 말이 이렇다"라는 식으로 엄청나게 퍼져서 "역사상 가장 멍청한 1001가지 발언(1001 Dumbest Things Ever Said"" 등 여러 책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여기 소개된 멍청한 발언 중 농구선수 편에서는 [[제이슨 키드]]의 "우리는 이 팀을 360도 변화시킬 겁니다", 1980~90년대 선수였던 리온 우즈의 "당신은 동생과 혈연관계가 어떻게 되나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선수였던 척 네빗의 "제 누나가 출산 예정인데, 제가 삼촌이 될지 숙모가 될지 모르겠어요" 등 심하게 어이없는 발언이 있어서 한 글자차이 말실수 정도인 매직으로선 좀 억울한 감도 있다.] * 1995년 4월 매직팀을 이끌고 방한해서 기아와 연세대 농구팀과 시합했다. 당연히 두 게임 모두 승리. * 1981-82 시즌에는 당시 레이커스 감독인 폴 웨스트헤드 감독과 심각한 갈등을 빚은 적이 있었다. 이는 웨스트헤드가 매직 존슨의 플레이 스타일과는 정반대인 지공 위주의 농구를 펼치려 했기 때문인데 결국 제리 버스 구단주는 매직 존슨의 손을 들어주고 웨스트헤드를 경질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를 매직에게 우호적인 어시스턴트 코치 [[팻 라일리]]로 대체하였다. 하지만 매직은 팬과 언론으로부터 감독을 내쫓은 건방진 선수라는 비난을 얻었는데 매직은 그 비난 여론을 파이널 우승으로 잠재웠다. * 제리 버스와는 단순히 고용주 & 고용인의 관계가 아닌 거의 부자지간의 정을 쌓았을 정도로 친밀했다. 제리 버스는 매직을 정말로 애지중지했고 그에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25년간''' 2500만 달러라는 계약을 맺었을 정도였다. 매직도 제리 버스를 아버지같은 분이라고 했을정도. 매직이 에이즈로 은퇴를 하게 되었을때 제리 버스는 너무 큰 충격을 받고 흐느꼈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 나이키의 창업자인 필 나이트의 자서전에 매직 존슨에 대한 이야기가 살짝 나온다. 필 나이트는 그가 포지션이 애매해서 뜨지 못할 것이라며 그에게 스폰을 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나이트는 자신의 실수 중에 하나였다고 밝혔다. 물론 후에 [[마이클 조던]]이라는 역대급 선수를 영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말이다. 다만 위의 내용은 진실인가는 좀 의문이 있다. 일단 매직 존슨 본인에 따르면[[https://www.inc.com/jeff-haden/oops-40-years-ago-magic-johnson-turned-down-a-shoe-deal-for-nike-stock-that-would-now-be-worth-billions.html|#]], 매직이 졸업했을 당시 나이키를 포함해 당시 모든 신발 회사들은 그와 계약하기 위해 제안을 했으나, 나이키는 돈을 제안할 수 없어서 주식을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당연히 매직의 말의 신빙성이 훨씬 높은 게, NBA에 데뷔할 당시 매직은 NCAA 우승팀의 에이스였던 데다가 당시로선 거의 없던 저학년(2학년) 포인트가드 전체 1순위 선수였다. 포지션이 애매하니뭐니해도 전미 최고의 유망주를 못 뜬다며 외면했다는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돈을 제안하지 못하고 주식을 주겠다고 했다"는 건 1979년 당시 나이키가 공격적으로 성장하고 있어 규모나 시장점유율에 비해 자금사정이 그리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이키는 이미 미국 런닝화 시장의 절반을 점유하고 있었다. 자금문제는 나이키가 1980년에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되면서 상당 부분 해결한다.][* 애초에 매직이 그렇게 '애매한' 선수였다면 전체 1순위로 지명됐을 리도 없다. 79년 당시 후발주자였던 나이키는 비록 러닝화 사업으로 크게 성공을 하긴 했지만 자금 상황도 넉넉치 못했고, 농구화 라인은 특히나 빈약했다. 70년대에 스펜서 헤이우드에게 10% 나이키 주식or10만 달러를 제안하기도 했는데, 헤이우드는 당시로선 거액이었던 10만 달러를 택했고 매직 역시 훗날 나이키의 미래에 대해 확신하지 못해 주식 대신 돈을 오퍼한 컨버스를 택했다고 밝혔다. 즉 79년 당시 아쉬운 입장이었던 건 농구화 시장에 뛰어든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나이키지, 전미 최고의 유망주였던 매직이 아니었다.] * 2022년 5월 NBA 플레이오프 중 발표된 뉴스에 따르면 NBA에 컨퍼런스 파이널 MVP가 신설되며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MVP 트로피 명을 매직 존슨 어워드로 결정했다고 한다. 동부는 그의 라이벌 래리 버드 어워드.[[https://www.nba.com/news/nba-introduces-new-lineup-of-postseason-hardware|#]] * 1995년도에 카림 압둘자바와 방한해서 연세대 농구팀등등과 경기를 했었다.1996년도에 한국의 피자헛에서 그의 실제 손바닥 사이즈가 담겨있는 농구공을 피자와 함께 판매했었다. 미칠듯한 손바닥 크기였으며 이당시에도 매직존슨의 인기는 대한민국에서도 유명할정도로 많았다. 참고로 96년도에도 방한을 했었다는데 자료를 찾아봐야 할듯. 저 농구공을 소유한 사람들이 극소수로 인터넷에 인증샷을 올린것도 있었다. * 전설적인 펑크록 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1989년 발매한 앨범 [[Mother's Milk]]의 4번 트랙의 제목이 'Magic Johnson'이다. 매직을 "마법의 남자"로 묘사하고 그의 업적과 매력에 대한 감탄을 표현한 곡.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